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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사피엔스> - 2부 농업혁명 / 제국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부자연스러운 것이란 없다.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것이다"

 

- 사피엔스, p. 216


농업혁명의 본질

[ 농업혁명이 삶의 질을 도약시켰다는 환상 ]

기원전 9000 여경부터 세계 각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농업이라는 기술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밀을 재배하고 염소를 기르는 것부터 시작하여 올리브나무, 포도 등을 재배하였고, 기원전 3500년에 이르자 오늘날 우리가 재배하는 대부분의 작물에 대한 작물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농업은 오히려 인간의 삶을 수렵채집인들의 것보다 힘들게 만들었다.

  • 여분의 식량이 더 나은 식사나 여유시간을 의미한 것은 아니며,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인간들은 삶의 대부분을 농사에 쏟아야 했다. 현대의 풍요로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약 40시간을 일한다. 개발이 진행 중인 국가에서는 평균 60시간, 많게는 80시간씩 일한다. 반면 수렵채집인들은 사흘에 한 번 정도 사냥을 하면 되었고, 채집에 걸리는 시간은 하루 3-6시간에 불과했다. 칼로리의 대부분을 극소수의 작물에 의존하는 농업사회의 식단은 영양학적으로 채집사회의 것보다 열악하고 병충해 등의 재해에 취약하다.
  • 농업은 인구의 폭발로 이어졌다. 하지만 작물은 인간 사이의 폭력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았다. 농부는 "사유재산"이 더 많았고 경작지가 필요했다. 이웃의 습격으로 땅을 잃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고, 단순 농경 사회에서 사망의 15%가 인간의 폭력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 시간이 흐르고 도시, 국가 등 보다 큰 사회적 틀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폭력은 통제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크고 효율적인 정치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수천 년이 걸렸다. ... 오늘날 우리는 풍요와 안전을 누리고 있고 그 풍요와 안전은 농업혁명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농업혁명이 놀라운 개선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수천 년의 역사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

- 사피엔스, p.128

 

 

[ 농업혁명이 사피엔스에게 가져온 것 ]

개개인의 입장에서 농업은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개인을 넘어선 <종의 성공>은 누가 굶주리고 누가 노동에 시달렸는지가 아닌, DNA 이중 복사선의 개수로 결정된다. 

 

작물 재배는 단위 토지당 식량 생산을 크게 늘렸고, 그 결과 호모 사피엔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농업 혁명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있게 만들었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간의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 소나 양, 사피엔스처럼 각자 복잡한 기분과 감정을 지닌 동물의 경우, 진화적 성공이란 것이 개체의 경험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종이 집단적으로 힘을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

 

- 사피엔스, p. 147

 


 

[ 이데올로기, 그리고 농경의 발생 ]

터키 남동부의 괴베클리 테페 지역에서 조각이 새겨진 기념비들이 발견되었다. 돌기둥은 높이 5m, 무게는 7톤에 달했다. 조사 결과, 이 유적은 연대가 기원전 95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이 거대한 유적이 농경 사회가 등장하기 이전인 수렵채집 사회에 만들어진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념비를 건설하는 방법은 여러 무리에 속한 수천 명의 수렵채집인들이 오랫동안 협력하는 <조직 노동>뿐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세련된 종교나 이데올로기 시스템밖에 없다. 

 

괴베클리 테페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작물화된 밀의 변종 중 하나인 외알밀의 발상지가 이 괴베클리 언덕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언덕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라는 문화적 중심지는 인류에 의한 밀의 작물화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기념물을 건설하고 이용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어쩌면 수렵채집인들이 야생 밀 채취 대신 집약적인 밀 경작을 시작한 목적은 사원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 우리는 마을이 생기고 번영하면 사원을 건설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 유적이 시사하는 바는 그 반대다. 먼저 사원이 건설되고 나중에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

- 사피엔스, p.140

 

 

<괴베클리 테페에서 발견된 기념비 유적지, 출처: 나무위키>

 

역사적인 발전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흔히 경제적, 인구학적 요인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대의 사건, 이를테면 제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나 문화와 같은 비물질적인 요인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농경사회가 등장하기 전에 조직 노동력과 문화가 존재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농경이 발명되었다는 가설은 흥미롭다. 


농업혁명, 그리고 질서

[ 농경시대에는 공간이 축소되고 시간은 확장되었다 ]

  • 농경을 시작한 이래로 인간은 수렵채집인의 그것보다 훨씬 작은 <인공적인 섬>에서 삶을 영위해왔다. 기원 후 1400년까지만 해도 인류는 지표면의 2%에 불과하는 좁은 지역에 몰려 살았다.
  • 그러나 동시에 농경사회에서는 미래의 몇 해 혹은 몇십 년의 세월에 대해 상상하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농업혁명은 <미래>를 중요하게 만들었다. 농부는 미래를 의식하고 그에 맞추어 일해야 했다.
  • 이러한 농사 스트레스는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대규모 정치사회의 토대가 되었다. 

 

"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

- 사피엔스, p.153

 

 

[신화는 어떻게 제국을 지탱하게 하는가 - ① 함무라비 법전]

기원전 1776년, 바빌론은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로 1백만 명이 넘는 국민이 살고 있었다. 함무라비 법전은 법조문과 판례 모음집으로, 함무라비를 정의로운 왕으로 제시하였으며 제국 내에서 통일된 법체계를 확립하는 토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식인들은 이 경전을 이상적인 사회질서로 여겼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의 예시는 아래와 같다. 

- 196. 귀족 남자가 다른 귀족 남자의 눈을 멀게 한다면 그의 눈도 멀게 만들라.

- 198. 만일 그가 평민의 눈을 멀게 하거나 뼈를 부러뜨린다면 그는 은 60세겔을 피해자에게 지불한다.

- 199. 그가 귀족 소유 노예의 눈을 멀게 하거나 뼈를 부러뜨린다면 노예의 가치의 절반을 지불해야 한다, ...

 

이 법전에서 바빌론의 사회적 질서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정의의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원칙은 신이 읊어준 것이라 단언한다. 이 법전에 따르면 계급제도는 매우 중요하고, 가족 내에 엄격한 위계질서를 정의한다. 따라서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며,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다.

 

 

[신화는 어떻게 제국을 지탱하게 하는가 - ② 독립선언문]

함무리비가 사망한 지 약 3,500년 후, 북미의 영국 식민지로 있던 주민들은 영국의 왕이 자신을 불공정하게 대한다고 느꼈으며 이들의 대표는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 모여 자신은 영국 왕의 신민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 독립선언은 보편적이고 영원한 정의의 원칙을 선언했는데, 이 원칙들 역시 신이 영감을 준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자유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이 독립선언문 역시 사람들이 원칙에 따라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동할 수 있게 하고, 이후 후손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 함무라비 법전을 믿는 사람들은 독립선언문이 틀렸다고, 현대의 미국인들은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사실이 아니다. 바빌론 제국의 왕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도 각각의 보편적이고 변치 않는 정의의 원리가 지배하는 현실을 상상했지만, 그런 보편적인 원리가 존재하는 장소는 오직 한 곳, 사피엔스의 풍부한 상상력과 그들이 지어내어 들려주는 신화 속뿐이다. 이런 원리들에 객관적인 타당성은 없다

 

-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자유, 평등, 인권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 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안정되고 변하지 않는 자연의 질서, 이를 테면 중력 등과는 달리 상상의 질서는 붕괴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상성의 질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때로 이러한 노력은 폭력의 형태를 띤다. (군대, 감옥 등)

 

- 그러나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는 유지될 수가 없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일부 있어야 한다. 사실 폭력은 인간의 집단행동 중 가장 조직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다. 어떤 사회의 질서가 "군사력"에 의해 유지된다고 할 때, 그렇다면 군대의 질서는 무엇이 유지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최소한 일부 지휘관과 병사는 돈이든, 명예든, 조국이든, 뭔가를 진심으로 신봉해야 한다. 

 

 

[ 상상 속 질서를 삶에 녹이는 법 ]

사람들이 상상 속의 질서를 믿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 아닌 객관적인 실재라고 믿게 해야 하며 둘째, 그 질서 속에서 사람들을 철저히 교육시켜야 한다. 이러한 질서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주된 원인은 세 가지이다.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으며, 주변의 물질적인 실재 세계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가 신봉하는 <개인주의>에 따라 모든 아이들의 방문에는 <문고리>가 있고, 부모는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간다. 중세에는 이런 <개인>이라는 질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2. 상상의 질서가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사람들이 가장 개인적인 욕망이라고 여기는 것들조차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라는 욕망은 자연질서 속에서 당연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지에서 돈을 쓰는 것은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신봉하기 때문이다. (p.173)

 

3.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설령 내 개인적인 욕망을 상상의 질서에서 분리하는 데에 성공하더라도, 개인은 개인에 불과하다. 상상의 질서를 바꾸기 위해서는 수백만명의 낯선 사람이 나와 협력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상호 주관은 많은 개인의 주관적 의식을 연결하는 의사소통망 내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법, 돈, 신, 국가가 모두 그 예시이다. 

 


언어의 발명

- 성경, 신화와 같은 것을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구전이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 재산과 같이 복잡한 사회에서의 정보, 즉 숫자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쓰기>라는 기법이 필요했다. 

 

- 초기의 문자 체계는 <불완전한 문자체계>였다. 완전한 문자체계는 구어를 어느 정도 완벽하게 표현하는 기호를 의미한다. 초기의 집단 사회, 이를테면 수메르인이 문자를 발명한 것은 구어를 복사하기 위해서가 아닌 구어가 하지 못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수학적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는 문자는 수천 년 동안 도시와 왕국의 상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학 데이터 이외에 더 많은 것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는 완전한 문자 체계로 진화해갔다. 기원전 3000년에서 2500년 사이, 수메르 문자체계에 더 많은 기호가 추가되며 오늘날 쐐기문자라고 불리는 완전한 문자체계로 바뀌어갔다. 

 

- 하지만 정보를 점토에 문자로 새기는 것만으로는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목록과 같은 조직화, 복사기 같은 복제 수단, 컴퓨터 알고리즘과 같은 검색법, 그리고 이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수메르와 이집트, 고대 중국, 잉카 제국의 문자는 문자 기록을 보관하고 목록을 검색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해석 불가능하게 사라진 다른 언어들과는 다르다. 

 

- 이들 언어에서는 단순히 읽기와 쓰기 뿐만 아니라 목록, 사전, 달력, 표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이는 우리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법과는 아주 다른 방법이다. 뇌에서는 모든 데이터가 자유롭게 연결되어 있다. 반면 관료제에서는 모든 것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체계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사고 체계를 바꾸어야 했고, 자유로운 연상과 전체론적인 사고는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 오늘날 정부나 회사에서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사람은 9세기경에 발명되어 오늘날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숫자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쓰기는 인간의 의식을 돕는 하인으로 탄생했지만, 점점 더 우리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

 

 

"인류는 어떻게 자신들을 대규모 협력망으로 엮었는가? 그런 망을 지탱할 생물학적 본능이 결핍된 상태에서 말이다. 간단하게 답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체계를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 사피엔스, p. 196

 


역사에서 정의는 없다 - 차별에 대하여

- 차별 (노예와 귀족이든, 인종이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든, 여성과 남성이든)이 없는 시대는 존재한 적이 없다. 복잡한 인간사회에서 상상의 위계질서와 불공정한 차별은 항상 존재한다.

 

- 사회적 차별이 형성되는 데에는 타고난 능력도 영향을 주지만, 상상의 질서에 영향을 받는다. 대부분의 재능은 육성과 개발이 필요한데, 이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지의 여부는 상상의 위계질서 속 위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상상의 질서에 따른 유리천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 이러한 위계질서는 대부분의 경우 일련의 우연한 역사적인 상황에서 탄생하여 여러 세대에 걸쳐 이해관계에 따라 영속성을 얻고 세련되어졌다. 

 

- 오염과 청결 개념은 사회 정치적인 구분을 짓는 데에 주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는 생물학적인 생존 메커니즘에 기원을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테면 인간은 병자와 같이 질병을 옮길 가능성이 있는 존재를 본능적으로 혐오한다. 따라서 어떤 집단을 격리하고 싶다면, 그들이 오염의 원천이라고 모든 사람이 믿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 차별의 악순환 - 미국의 인종차별 사례 ]

- 16세기부터 약 2백여 년간,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 노예를 미국으로 수입해 대규모 농장에서 일하게 하였다. 수입원으로 아프리카가 낙점된 이유는 1) 아시아 등에 비해 가깝고 2) 아프리카에는 이미 잘 확립된 노예무역이 존재했으며 3) 아프리카인들은 미국에 존재했던 질병에 대해 면역력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면역력 관점에서의 유전적인 우월성이 사회적인 열등성으로 번역된 것이다. 

 

- 그러나 미국의 백인 지배인들은 그들이 특정 인종이나 출신을 노예로 사용하는 이유를 경제적인 요인 때문이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따라서 종교적, 과학적 신화를 만들어 노예제를 정당화하였다.

 

- 19세기 이후 노예제를 불법으로 명시하고, 노예무역이 중단되며 미국에서 노예가 해방되었다. 그러나 인종분리는 인종차별적인 입법과 사회적인 관습에 의해 지속되었고, 이후 악순환은 되풀이되었다. 초기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도입했던 흑인에 대한 낙인 - 천성적으로 게으르며 지능이 떨어진다라는 신화는 편견이 되어 시간이 흐르며 고착화되었다.  

 

- 이러한 인종분리는 규범으로 제도화(짐 크로 법)되기도 하였고, 20세기 중반 과거 남부연합에 속했던 주들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은 19세기 말보다도 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1958년 미시시피 대학교에 지원한 흑인 학생 클레넌 킹은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었는데, 흑인이 주립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미친 생각이라고 <판결>하였기 때문이다. 

 

- 시간이 흐르며 인종차별은 문화 영역으로 퍼졌는데, 이를테면 미에 대한 기준은 백인을 기준으로 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수세기 지속되며 역사적으로 우연히 발생한 질서에 불과하던 상상의 위계질서를 강화하고 지속시킬 수 있다.  

 

 

[ 성별 - 인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위계질서 ]

- 농업혁명 이후로, 어떠한 집단에서든 남성은 여성보다 좋은 몫을 차지해왔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증거로 많은 법 체계에서 강간을 재산권 침해의 문제로 다루었다. 강간에 대한 손해 배상은 소유권 이전으로 해결하였고, 남편이 아내를 강간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었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은 아내의 성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갖는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독일에서도 1997년에 이르러서야 부부간 강간이라는 법적 범주가 만들어졌다.  

 

- 남녀 간의 정치/문화/법적 차이 중 일부는 성별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 주변에 그와 관련이 없는 문화적인 개념과 규범을 쌓아올렸다. (p. 214)

 

"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단지 사람들이 생물학적 신화를 통해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는 기준이다. 생물학은 매우 폭넓은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부자연스러운 것이란 없다.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것이다.  "

- 사피엔스, p. 216

 

 

 

[ 남성성이 여성성보다 가치 있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

가부장제는 거의 모든 농경, 산업 사회의 표준이었으며, 정치/사회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수십 세기에 거쳐 유지되었다. 이는 너무나 보편적이기 때문에 우연한 사건에 의해 촉발된 악순환의 결과일 수 없다. 거의 모든 문화가 남성성을 우위에 두는 선택을 한 데에는 생물학적인 이유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고, 설득력이 있는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 근력 -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라는 것은 가장 흔한 이론이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다'는 명제는 특정 종류의 힘에 대해서만 참이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굶주림, 피로, 질병 등에 있어 남자보다 강하다. 또한 역사적으로 여자는 육체적인 강인함이 요구되지 않는 직업에 대해서도 배제되어 왔으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경우 육체적인 힘과 사회적인 권력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인간 사회에서 신체 능력과 사회적인 권력은 반비례하는 경우가 흔했는데, 육체노동은 하층민이 맡는 사회가 많았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 공격성의 결과 - 남자는 여자보다 폭력적이며 이러한 공격성의 결과 역사적으로 전쟁을 통해 남자의 통제력을 키웠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병사가 모두 남자라고 해서 그 결실을 차지해야 하는 사람도 남자라는 법은 없다. (농장에서 목화를 재배하는 사람이 모두 흑인이라 해서 농장주도 흑인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어불성설임과 같다.) 또한, 역사적으로 제국을 건설한 사람은 공격적인 야수가 아닌 적군의 마음까지도 읽을 수 있고, 유화정책을 사용할 줄 아는 협동적인 인물이었다. 
  • 가부장적인 유전자 - 수백만 년의 진화의 결과, 남녀는 각기 다른 생존과 번식 전략을 발전시킨 결과라는 생물학적 관점의 이론이다. 하지만 같은 전략을 선택한 동물 집단에서는 오히려 모계중심의 사회가 형성된 예시가 있다. 

결국, 젠더의 역할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난 세기를 거치며 젠더의 역할에 커다란 혁명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회가 남녀에게 동등한 법적인 지위와 정치적 권리, 경제적인 기회를 부여하고 있으며 젠더와 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을 완전히 다시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