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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신곡 - 지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데디아

Per me si va ne la citta dolente,
per me si va ne l'etterno dolore,
per me si va tra la perduta gente.

Giustizia mosse il mio alto fattore;
fecemi la divina podestate,
la somma sapienza e 'l primo amore.

Dinanzi a me non fuor cose create
se non etterne, e io etterno duro.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intrate.

 

"여기에 들어오는 그대, 모든 희망을 버려라."

 

 

안내자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 구덩을 순례하는 단테. 그의 글을 읽는 나 또한 그들의 꽁무니에 숨어 무시무시한 지옥을 여행하고 있었다. 단테는 정말로 지옥을 보고 오기라도 한 듯이 그곳의 광경과 비명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단테의 지옥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과 실제 역사가 뒤섞여 상상과 실제를 넘나 든다.

 

신화 속 비극은 지옥을 묘사하는 은유가 되고, 성경을 배반한 유다와 제국을 배반한 브루투스는 같은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 속 지옥의 원들에는 신화 속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글로 마주한 르네상스는 상상의 나래 속에 환상적이고 장엄한 느낌이었다.

 

 

 


제 5 곡

 

"프란체스카여! 당신의 기구한 운명이 나를

울리는구려. 슬프로 가여울 뿐입니다.

 

말해보시오. 한숨짓는 달콤한 욕망으로 살던

그 시절에 어떻게 사랑이

당신의 숨은 열정을 알려 주었단 말이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선생님은 아시겠지만,

비참할 때 행복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는 일만큼

괴로운 것은 없어요. ... "

 

 

 

첫 번째 고리, 애욕의 죄의 고리에서 프란체스카는 이렇게 말한다.

"비참할 때 행복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는 일만큼 괴로운 것은 없어요 ". 

더이상 희망이 없는 곳에서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절망하는 곳, 그곳이 지옥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정체된 채로 과거의 영광만을 되새기며 사는, '그 때가 참 좋았었는데'라는 입버릇이 하루하루를 지옥으로 만드는 마음의 지옥이라는 생각과 함께 최근에 재미있게 본 넷플릭스 드라마 <굿 플레이스>가 떠올랐다. 

 


하지만 고리를 거듭해 나아갈 수록 지옥의 모습은 역시나 육체적 고통을 겪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옥의 모습은 결국 끝나지 않는 육신의 고통으로 묘사되는 것은 흥미롭다. 우리는 때때로 옳은 일을 행하고 정의롭게 살기 위해 굶주림과 같은 현생에서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육신의 안일함을 택한 대가라는 것이 내세에서의 육신의 고통이라니... 양심의 가책이니 뭐니 해도 결국 내가 아픈 게 제일 무쪄워 이런 건가 ㅎㅎㅎ

 

어쨌든 지옥에서의 묘사가 어찌나 생동감 넘치는지, 일면식도 없는(?) 죄인이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읽고 있는 내가 나쁜 비디오를 흥미롭게 보고 있는 변태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사기의 죄를 벌하는 제 8 구덩의 7원을 묘사한 25곡은 그중에서도 압권이었다. 그곳에서는 도둑들이 뱀에게 물려 파충류로 변하고, 파충류였던 것은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 시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제 25 곡

 

독자여,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잘 믿기지 않더라도 놀라지 마시라!

직접 본 나도 수긍하기 힘드니까.

 

저들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있는데

발이 여섯 개 달린 뱀이 덤벼들어

우리 밑으로 다가온 세 망령 중 하나를 휘감았다.

...

뒷발로는 허벅지를 짓누르고 꼬리는

사타구니 사이에 넣어 허리를 휘감아

자기 등 뒤로 뻗어 올렸다.

...

마치 뜨거운 초가 녹아내리듯

두 몸은 서로 엉키더니 색깔이 뒤섞여

이전에 지녔던 각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치 종이가 너울거리는 불꽃 앞에서

처음에는 노란빛을 띠다가 미처

새카맣게 되기도 전에 흰빛이 죽는 것과 같았다.

 

다른 두 망령이 그를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저런, 아뇰로. 네 몸이 변하고 있어!

완전히 둘이 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나도 아닌걸!"

...

내가 본 것은 완벽한 변신이었다.

뱀의 꼬리는 쇠스랑처럼 갈라졌고

죄인의 두 발은 하나로 합쳐졌다.

 

두 다리와 허벅지는 삽시간에 서로

달라붙고 뭉개져 접합된 부분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한편

 

뱀의 갈라진 꼬리는 그렇게 없어진

상대방의 형상으로 변했는데, 제 가죽은 부드러워지고

상대방의 피부는 딱딱해졌다.

 


제 17 곡

 

몇 사람을 눈여겨보았지만

아무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목에 주머니를 걸고 있음을 깨달았다.

색깔과 문장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와중에도

그들의 눈은 주머니를 흡족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은 다양하게 묘사된다. 프란체스카의 연인은 과거의 일을 후회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7 지옥 사막에서 불의 비를 맞으며 고통받는 고리대금업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생전에 모은 가문의 자산을 흡족하게 바라본다.

 


제 18 곡

 

그러자 그는 자기 머리통을 때리면서

말했다. "혓바닥이 지칠 줄 모르고 알랑거린 탓에

나는 이 깊은 구석에 처박히게 되었다!"

 

 

 

지옥이 있다면 죄의 무게는 어떻게 달게 될까?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 죄를 지음으로써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된 사람?

 


 제 11 곡

 

우리는 양심을 찢어지게 하는 배반의 죄를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사람에게나

조금도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저지를 수 있지.

 

...

마지막으로 자기를 믿는 사람을 배반하는 일은

타고난 사랑과 그에 따라 만들어지는

특별한 믿음을 파괴하는 극악이야

 


제 16 곡

 

진실은 거짓의 여러 얼굴들을 지니는 법이다.

그 앞에서 사람은 되도록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런 진실을 말하면 자칫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으니.

 


제 24 곡

 

"이제야말로 네가 나태함을 벗어 버릴 때로구나.

베개를 베고 이불속에 누워 편안함을 즐기다가는

명성을 얻을 수 없느니라!

 

명성 없이 삶을 소모하는 사람은

허공의 연기나 물속 거품과 같은

흔적만을 세상에 남길 따름이다.

 

그러니 일어나라! 무거운 육체에 눌려

주저앉지 않으려면. 모든 싸움을

이기는 정신으로 숨 막히는 어려움을 극복하여라."

 


제 31 곡

 

그가 답했다. "네가 어둠 속에서

너무 멀리 보려다 보니

진실을 상상과 혼동한 모양이다.

 

눈이 멀리 있는 것에 얼마나 속기 쉬운지

저곳에 가면 잘 알게 될 것이다."